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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1로99번길 34-1새 창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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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빠져드는수집가31 작성일26-07-12 15:51 조회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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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역사탐방을 시작한 이후부터 가능하면 다녀온 당일에 블로그 포스팅 하려다보니 피로감이 든다. 글 쓰기 초보인지라, 작업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모된다. 맥락을 파악해야 된다는 강박이 있고,무엇보다 많은 정보를 담으려다 보니 글이 장황하게 길어지는게 아닌가 싶다.취미생활 한답시고 밖으로 나다니다가,집에서는 저녁내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이 요즘 예사롭지 않다.그래서 아내가 주말에 나들이 가는데 들고 갈 가방을 수선했는데 자진해서 찾아다 준다거나, 화장실과 하수구를 깨끗히 청소해 놓는 등 눈치를 보면서 비위를 맞추고 있는 중이다.​한강 역사탐방 여덟 번째 길, 동작진 길이다. 자리가 얼마나 좋으면 제목에 명당이라고 했을까?이번 길은 서울현충원에 참배를 다녀왔다 표현하고 싶다. 곧 6월 호국보훈의 달인데, 의미 있는 탐방길이었다. 탐방 길은 동작역 4번 출구 → 국립서울현충원 정문 → 현충탑 → 애국지사 묘역이다 ​지하철 4/9호선 동작역 3번 출구로 나가는 길은, 9호선 뒤 칸에서 내린 나로서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노량진 쪽에서 출발하여 갈 때 앞 칸으로 가야 거리가 짧아진다. 출발지인 동작역 4번 출구에서 보니 구반포 아파트 재건축 공사가 한창이다. 재건축 중인 구반포와 출발지 동작역 4번 출구동작진 길/명당 동작진과 애국지사사라진 바둑 섬, 기도 지금 우리가 서있는 동작역 3,4번 출구(육교 위)는 이전에는 물길이 다니던 곳이었다. 이 전 구반포 아파트 자리는 기도(碁島, 바둑 섬)라는 섬이 있었다.'기'자가 바둑돌기(碁) 자이다. 기도에는 흰 돌이 많아 이 돌들로 흰 바둑돌을 만들었다. 조선시대 관리들이 근무시간에 바둑을 두다 걸리면 기도로 하루 정도 귀향을 보내기도 했다 한다. 아예 하루 정도 실컷 바둑을 두고 오라는 뜻일 것이다. 옛 선조들은 풍류가 있었다. 바둑에는 흰 돌이 있으면 검은 돌이 있는 법. 검은 돌은 흑석이 많이 나는 지역, 지금의 흑석동에서 나는 검은 돌을 흑돌로 삼았다.1970년대 한강개발 당시 기도는 반포지구 공유수면 매립공사로 육지가 되어 지금 재건축인 구반포 아파트 자리가 되었고, 기도를 대신하여 1980년대 한강 종합개발 시기 서래섬이 만들어졌다. ​* 당시 반포 아파트는 아시아개발은행(ADB)로부터 자금을 차관하여지었다​삼남과 한양의 연결통로, 동재기 나루터동재기는 흑석동에서 현 국립현충원으로 넘어오는 강변에 구리 빛나는 돌들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동재기나루터는 삼남지방과 수도 한양을 연결하는 나루터였다. 충정, 경상, 전라도 지역의 사람들과 물자들이 영남 대로, 삼남 대로를 통해 한양으로 들어올 때 이곳 동재기 나루터(동작진)로 들어오고 나간 곳이다. 춘향전의 이몽룡도 춘당대시(春唐臺試)에서 급제하여 이곳 동재기나루터를 지나 남태령을 넘어 남원으로 달려갔다.* 춘당대시: 조선 후기 창덕궁 후원에 있는 내각 하수구'>내각 하수구'>내각 하수구 춘당대에 임금이 친히 와서 인재를 뽑던 과거시험과 무예 시험동재기 나루터 표지석 겸재 정선의 경교명습첩 동작진도 정조 이전 왕들은 선대왕들의 능을 참배하러 원행을 나갈 때 동재기나루터를 지나 남태령을 넘었다. 하지만 정조대왕은 동재기나루터 대신 노들나루(노량진)로 변경했다. 노들나루는 동재기나루보다 강폭이 훨씬 넓어 배다리를 만들어 건넜다. 정조도 처음에는 선대 왕들처럼 아버지 사도세자 묘인 헌륭원이 있는 수원으로 원행을 나갈 때 동재기나루터를 지났다. 하지만 정조가 남태령 고개를 넘는 길에 아버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한 노론 벽파 김상로의 묘가 있어 이를 심히 불쾌히 여겨 원행 경로를 바꾼 것이다. 이후 정조는 노들나루에서 시흥 대로를 지나 수원 헌륭원으로 행차했다. 이 경로가 조금 변하긴 했지만 오늘날 1번 국도이다.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은 사건을 임오화변이라 한다.*한강변의 창회정에서 바라본 8가지 풍경을 창회 팔경이라 했다.동작진에는 팔경 중 2경이 있다. 산사에서 들려오는 범종소리, 기도에서 들리는 서래풀 소리가 그것이다. 서래풀은 고려 때 벼를 서래로 불렀다. 오늘날 서초와 서래 마을의 유래이다.민족의 얼이 서린 곳, 동작동 국립현충원국립현충원에 둘러진 철재로 만든 담을 본 적이 있는가? 담에는 많은 기록들이 있다. 가는 길에 해설사께서 유해발굴감식단을 꼭 기억하라 한다.동작동 현충원 철제담에 담긴 기록들현충원은 국군묘지에서 시작됐다.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를 한곳에 모시자 해서 1955년 국군묘지를 만들었다. 1965년부터는 독립유공자도 함께 안장하면서 국립묘지가 되었다. 1996년도 현충원으로 개칭하면서 서울 국립현충원이 되었다. 이는 80년대 대전현충원을 만들면서 서울을 붙인 것이다.규모는 총 44만 평이고, 대전 현충원이 1.5배 더 크다. 서울 현충원은 54,000여 명이 안장되어 있으며 지금도 못 찾은 유해가 104,000명 있다.안장 인원으로는 대통령 4분(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국가 발전 위해 헌신하신 86명, 버마 아웅산 테러로 순직한 국무 위원, 안익태, 주시경, 포항제철 박태준, 한복연구가 김영희, 보스턴 마라톤 서영복선생도 안장되어 있다. 현충지 현충원 내 연못 현충지다.연못에 핀 수련을 찍기 위해 사진작가 동호회원들이 사진을 찍는데 열중이다.연못은 현충원 내 잔디를 가꾸는데 필요한 물을 공급하며, 화재시 소방용수로 사용된다. 현충원은 시민들 누구나 출입 가능하며 자동차도 무료주차이다. 단 도로는 일방통행인 점 주의해야 한다.​학도의용군 무명용사의 탑이다. 당시 학도의용군은 약 30만 명이며, 오만 명이 참전하였다. 그중 영화 '포화속으로'소재로 알려진 포항여중전투에서 학도의용군 71명은 교복을 입고 수류탄만 든 채 포항 방어선을 내각 하수구'>내각 하수구'>내각 하수구 지켰다. 그중 47명 전사하고 10명이 행방불명 되었다. 전사자 중 서울 동성중 3학년 이우근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quot어머니에게 쓴 편지는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학도의용군 무명용사의 탑우리 팀은 현충문을 지나 충혼탑에서 분향을 하였다. 대표로 내가 분향을 하게 됐다. 나보다 연장자분께 하시라 했는데 극구 사양하셔서 할 수없이 내가 하게 되었다. 주요 행사 시에는 사람이 안내를 하지만, 일반인이 분향을 할 때는 자동음성으로 안내하게 되어 있어서 음성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 하면 된다. 분향할 때 향을 세 번 분향하는데 이는 천. 지. 인 사상을 반영한 것이라 했다. 현충문 현충탑현충탑은 높이가 31m이다. 31m인 이유는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3.1운동은 우리가 왕정국가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이 수립되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현충탑 밑 기단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현충탑 내부 위패봉안관 중앙에는 영현승천상(英顯昇天像)이 있고 그 주위로 6.25전쟁 당시 유해를 찾지 못한 호국용사들의 이름이 적힌 10만 4천여 명의 위패가 모셔져있다.'영현'은 죽은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죽어서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이 하늘로 평안히 승천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유해발굴감식단이 이만여 명의 유해를 찾았으나 실제 DNA가 일치하는 유해는 천여 기라 한다. 당시에 DNA 체취가 제대로 안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위패봉안관에서는 사진촬영을 삼가라는 해설사 안내에 따라서 사진촬영을 하지 않아 사진은 생략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라 칭하는데, 구분은 다음과 같다- 순국선열 : 주권을 빼앗겼을 때(해방 이전)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항거하다가 순국하신 분들- 호국영령 : 1945년 광복 및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전쟁이나 이에 준하는 재난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다 전사, 순직하신 분들을 말한다.현충원의 수양 벚 나무충혼탑을 나오면 무명용사 봉안관이 보이는 곳에 수양 벚나무가 있다.무명용사 봉안관수양 벚나무는 조선 때 무기를 만드는 재료이다. 수양 벚나무 나무 피와 수피를 활에 감아서 활시위를 당겼을 때 부러지지 않도록 했다. 수양 벚나무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수피 89장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효종때 특히 수양 벚나무를 많이 심었다한다. 효종이 북벌을 추진하면서 수양 벚나무 심기를 장려서이다.현충원에 수양 벚나무가 있는 이유다.​현충원 원래 주인인 무명용사의 묘이다. 화병을 보면 꽃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이 있다.5월은 헌화 교체 시기로 교체가 진행 중이다 현충원은 5월과 9월에 두 번 꽃을 교체한다. 6월 현충일과 호국보훈의 내각 하수구'>내각 하수구'>내각 하수구 달 행사 대비와 10월 국군의 날 및 추석 참배객을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공작 포란&quot지세 천하명당의 주인, 창빈 안 씨 이곳 현충원은 풍수지리 측면에서 명당인데 그중에서도 공작 포란&quot지세로 으뜸인 곳에 성종의 6번째 비인 창빈 안 씨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창빈 안 씨 묘 입구와 신도비 창빈 안 씨는 어려서부터 궁궐에 들어와 '생각시'시절부터 총명하고 성실하여 중종의 어머니인 자순 대비를 지극정성으로 모셔 대비전의 사랑을 받았고, 중종의 정비였던 장경왕후(인종의 어머니)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장경왕후가 인종을 낳고 죽자, 중종이 장경왕후를 기리며 장경왕후가 아끼던 궁녀 안씨를 가까이 두었고, 이내 안씨는 승흔을 입어 상궁이 된 후, 아들을 낳고부터 숙원(종 4품)으로 봉해지며 정식 후궁이 되었다.장경왕후가 죽은 후 중종의 계비(중종의 세 번째 정식 왕비)가 된 인물이 바로 그 문정왕후이다. 권력의 화신이었던 문정왕후도 성품이 유순하고, 자신을 공경하며,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되지 않으면서도 현숙한 안씨를 잘 대하였고 안씨가 낳은 자식들을 왕실의 일원으로 예우해 주었다.창빈 안 씨는 중종에게서 영양군, 덕흥군(훗날 선조의 아버지, 선조가 왕이 되자 대원군이 된다), 정신 옹주를 낳았다. 문정왕후의 아들인 제13대 명종은 이복동생인 덕흥군과 비슷한 나이대로 형제간 우애가 깊었다. 특히 명종에게는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순회세자가 일찍 사망), 이복동생인 덕흥군의 아들들(조카들)을 친자식처럼 아끼며 궁궐에 자주 들르게 했다. 1567년 명종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34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승하했다. 조선왕조 최초로 왕의 직계 혈통이 끊어지는 국가비상사태가 발행한 것이다. 이에 명종의 정비인 인순 황후는 평소 명종과 우애가 깊었던 덕흥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을 양자로 입적하여 왕위를 잇게 하니 바로 제14대 선조이다. 이로부터 창빈 안 씨 후손들이 조선의 모든 국왕들이 된다.​창빈 안 씨의 묘소가 최고 명당 공작 포란지세에 안장된 사연과 관련 야사가 전해 내려온다.왕이 죽으면 후궁들은 자식이 없으면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거나, 자식이 있으면 사가로 출궁해야 했다중종이 승하하자 창빈 안 씨는 절로 들어가려 했으나 문정왕후가 자신의 곁에 더 머물라 하여 창빈 안 씨는 궁궐에 더 머무르게 되었다. 여기서 사가에 살던 창빈 안 씨의 손자들(하원군,하릉군,하성군)이 할머니에게 문안 인사를 드린다는 핑계로 명종과 문정왕후가 있는 대궐을 수시로 드나들 수 있었다. 이 당시 명종은 덕흥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을 눈여겨보았다 전해진다.그러던 어느 날 창빈 안 씨는 사가(둘째 아들 덕흥군)를 방문하였다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객사를 하게 된다. 창빈 안 씨 묘는 처음에는 경기도 양주 장흥에 쓰였다.​* 지금부터는 전해오는 야사이다. 창빈 안 씨 둘째 아들 덕흥군에게 풍수지리를 보는 내각 하수구'>내각 하수구'>내각 하수구 지관이 말하기를 서달산 이곳은 수십 명의 왕들이 나는 자리라 했다. 하지만 서달산은 이미 왕실 땅으로 묘를 함부로 쓸 수 없는 곳이었다. 이에 지관은 덕흥군에게 일주일을 굶고 문정왕후를 만나 문정왕후가 얼굴이 왜 수척하냐고 물어보면 밤마다 꿈에 어머니(창빈 안 씨)가 나타나 물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살려달라 그런다며 이 때문에 잠을 못 자서 얼굴이 수척해진 거라 말하라 했다. 이에 덕흥군이 일주일을 굶은 후 문정왕후를 찾아뵈었는데 과연 문정왕후는 얼굴이 왜 그런지 묻자 덕흥군은 지관이 알려준 대로 말했다. 이에 문정왕후는 묘에 물이 차서 그런 것 아니냐며 묘를 빨리 옮기라 해서 이곳 &quot공작 포란&quot지세인 최고의 명당에 묘를 이전했다 전해진다.이후 창빈안씨 손자 선조부터 마지막 왕 순종까지 창빈 안씨 핏줄이 왕이되었다.* 이승만 대통령도 헬기를 타고 이 일대를 둘러보니 과연 명당자리여서, 내각 죽으면 저기에 들어갈 수 없 냐며 농담을 했다고도 한다. * 이 주변으로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 묘역이 있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묘역어떤 묘비에는 순국선열이라 표기되어 있고. 어떤 묘비에는 애국지사라 표기되어 있다. 차이점은 1945.8.15일(해방) 이전에 돌아가신 분은 순국선열이라 하고, 해방 이후 돌아가신 분은 애국지사라 한다. 해설사께서 지하철 4호선 타고 이곳 지날 때 꼭 추모하라는 당부를 한다.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의병장을 비롯 독립투사와 애국지사들이 영면해 계신다.의병장 신돌석장군 묘역 정미년 군대해산에 항거 자결한 박승환 묘역의병대장 신돌석장군과 1907년 정미년에 일제에 의해 대한 제국 군대가 해산하게 되자 이에 항거하여 권총으로 자결을 택한 박승환 참령의 묘역이 있다.독립유공자 묘역에서 바라본 반포 및 서초종로경찰서 습격 의열단 김상옥 묘역 일제 총독 스즈키 암살 시도 강우규 묘역 일제강점기 때 가장 악명 높았던 종로경찰서에 폭탄 투척 후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일본 군경 수백 명과 홀로 맞서 싸우다 마지막 남은 한발의 총알로 자결한 의열단 김상욱의 묘와,만 64세의 나이에 당시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신임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에게 폭탄을 투척하고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한 강우규 의사묘역이 있다. 현재 서울역 광장에 강우규 동상이 있다. 신사참배 거부로 순국한 주기철 목사 묘역 하얼빈 안중근 의사 동지 우덕순 묘역일제의 신사참배를 온몸으로 거부하다 옥고와 고문으로 평양 교도소에서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 묘역하얼빈에서 안중근 장군이 이토 히로부미 내각 하수구'>내각 하수구'>내각 하수구 암살 당시 하얼빈 전 정거가 채가구에서 이토를 저격하려 대기했던 안중근의 동지 우덕순의 묘역이 있다.위대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이회영 묘역일제가 나라를 빼앗자 조선 최고의 명문가 였던 이회영 육형제는 가문의 전 재산을 정리 후 만주로 망명, 독립군 양성의 요람인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였다. 육 형제 중 이회영을 비롯 다섯 명은 차가운 감옥에서 순국하였고 막내 이시영 박사만 유일하게 생존, 귀국하여 대한민국 첫 부통령이 되었다. 이회영 손자가 현 광복회장 이종찬 전 의원, 민주당 이종걸 전 의원이다. 둘은 사촌 형제이다. ​이외에도 청산리 전투에서 유일하게 여성으로서 참전한 남자현 묘역도 있다. 남자현은 의병 김영주와 혼인하였는데 남편 김영주가 단발령에 분격해 일어나 을미의병으로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다. 유복자를 키우며 3.1운동 후 아들과 함께 만주로 건너가 망명했다. 이후 간도 서로 군정서에 가입하여 병사들의 옷을 짓고 부상병들을 간호하여 독립군의 어머니라 불렸다. 영화 암살에 나오는 것처럼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암살하려 권총을 가지고 서울에 잠입했으나 경비가 삼엄하여 뜻을 못 이루고 만주로 생환하였다.*영화 '암살'의 여주인공 전지현 역의 실제 모델이다.독립유공자 묘역에서 바라본 한강에필로그독립유공자 묘역을 끝으로 탐방은 종료되었으나, 현충원 내에 있는 호국지장사를 들러 보기로 했다가는 길에 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을 지났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국내는 물론 만주, 연해주에서 이름도 없이 산화한 독립군 무명용사들의 넋을 위로하고 추모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또한 육군 병장 박경남을 추모하며라는 입간판을 지날 때 벤치에 앉아 낮은 목소리로 전선 야곡을 부르고 있는 어르신을 보았는데 아마 옛 전우들을 생각하시는 듯하다. 저 노병의 전선 야곡을 들었을 때 왜 가슴이 먹먹해졌을까? 벤치에 홀로 앉아 전선 야곡을 부르던 어느 노병호국지장사 경내를 둘러보니 5.24일 부처님 오신 날을 준비하는 연등이 달려있는 고즈넉한 사찰이다.눈길을 끄는 것은 벽면을 따라 계단식으로 빽빽이 자리 잡은 수천 개의 앉은 지장보살상을 배경으로 지장보살이 서있다. 지장보살은 천상에서 지옥까지의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극락세계로 안내하는 보살이다 벽면을 따라 계단식으로 빽빽하게 작은 지장보살상을 배경으로 지장보살상이 있다#동재기나루터표지석 #겸재의그림동작진도 #산사의범종소리 #바둑도기도 #기도로귀향을보냄 #흑석동유래 #1번국동유래 #춘당대시란 #호국지장사의지장보살 #독립군의어머니 #독립군의어머니남자현 #공작포란 #창빈안씨의묘 #창빈안씨의후손 #창빈안씨명당자리 #수양벚나무의용도 #서래마을유래 #서초의유래 #이우근의편지 #포항여중전투 #학도의용군이우근 #강우규열사 #채가구우덕순 #신사참배거부주기철목사 #노론벽파김상로 #포화속으로모티브 #한강이야기여행 #한강역사탐방 #도보탐방 #걷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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